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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는 1506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사망. 그의 요청에 따라 유해는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로 옮겨져 그곳에 묻혔다. 1795년 유해는 일시적으로 쿠바로 옮겨진 후 1889년 세비야로
- 콜럼버스는 유언장에서 "Siendo yo nacido en Genoba 저는 제노바에서 태어났다"고 주장
- 최근 DNA 분석 결과, 발렌시아 지역 출신의 세파르딕 유대인의 유전적 구성과 일치
- 유대인-스페인 출신은 선원이 평생 자
DNA로 콜럼버스의 출신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었다.
유명한 선원은 스페인계 유대인 출신이었을 수도 있다.
유명한 선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자신이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DNA 분석 결과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스페인과 유대인 혈통이었다. 그의 유전적 구성은 콜럼버스와 그의 아들, 형제의 뼈를 조사한 결과 발렌시아 지역 출신의 세파르딕 유대인의 유전적 구성과 일치한다. 이것은 또한 선원이 평생 자신의 출신을 숨긴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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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기원은 500년 이상 미스터리였다. 이제 DNA 분석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을 수도 있다. © historisch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 아메리카를 "발견"한 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콜럼버스라는 남자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비밀이 남아 있다. 역사가들은 그의 생년월일만 추정할 수 있다. 그는 1451년 여름이나 가을 어느날 세상의 빛을 보았다고 한다. 어디도 불분명했다. 선원은 평생 자신의 주변 환경을 어둠 속에 남겨 두었다. 그는 유언장에서만 "Siendo yo nacido en Genoba 저는 제노바에서 태어났습니다”고 주장했다. 콜럼버스가 이것을 은유적으로 의도했는지 아니면 실제인지는 불분명하게 남아 있다.
22년 동안 DNA에서 단서를 찾아 헤매다그라나다 대학의 호세 안토니오 로렌테(Jose Antonio Lorente)가 이끄는 팀이 20년 동안 진행해 온 연구 프로젝트는 이제 정보를 제공했다. 그들은 콜롬보와 같은 성을 가진 콜럼버스 친척의 가능한 후손을 찾기 위해 다양한 스페인, 이탈리아 및 프랑스 도시를 찾았다. 콜론 또는 콜롬.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그들의 DNA를 세비야 대성당에 묻힌 콜럼버스의 형제 디에고와 그의 아들 에르난도의 뼈에서 채취한 유전자 샘플과 비교했다.
로렌테와 그의 팀은 또한 몇 차례의 재매장 이후 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뼈에서도 DNA 샘플을 채취했다. 콜럼버스는 1506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사망했으나 그의 요청에 따라 그의 유해는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로 옮겨져 그곳에 묻혔다. 1795년 유해는 일시적으로 쿠바로 옮겨진 후 1889년 세비야로 돌아왔다.
"우리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DNA를 일부만 가지고 있지만 충분하다"고 토요일 스페인 TV에 게재된 프로젝트와 그 결과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Lorente가 말했다.
DNA는 세파라딕(Sephardic) 조상을 암시한다DNA 분석 결과 콜럼버스와 그의 아들은 이탈리아인이 아니었고 제노아 출신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DNA 비교 결과는 스페인 발렌시아 주변 지역 출신의 세파르딕 유대인들의 유전적 구성과 강한 일치를 보여주었다. Lorente는 “우리는 Hernando의 Y 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 DNA에서 유대인 기원을 암시하는 특징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콜럼버스의 유대인-스페인 출신은 유명한 선원이 평생 자신의 조상과 기원을 그토록 비밀로 유지한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무어 시대 동안 스페인에서 유대인 인구는 오랫동안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지만 "정복"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기독교 카톨릭 왕들의 스페인 재정복. 1492년, 스페인 왕실 부부인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는 마침내 스페인에 살고 있는 약 30만 명의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스페인을 떠나도록 명령했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부모도 아마도 그가 태어난 직후에 스페인을 떠났을 수도 있다.
출처: CNN, BBC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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