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zero)에 관한 숨은 이야기 (4) "0이 유럽대륙에 상륙한 경위"

문광주 기자 / 기사승인 : 2025-02-14 20: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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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하메드 알콰리즈미, 826년에 인도숫자에 관한 책 저술, 인도 십진법 설명,0 도입
-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는 알콰리즈미라는 이름의 잘못된 번역에서 유래
- 1202년 피보나치,산반수론을 출판,새로운 십진법의 실질적 이점 보여주기 위해 0 사용
- 16세기에 애덤 리스(Adam Ries) 독일어로 여러 권의 수학 교과서에 0 사용

특별한 숫자의 긴 여정: 제로가 유럽에 온 경위

0의 역사에서 유럽은 "후발 수용자"였다. 약 500년 전까지 이 특별한 숫자는 유럽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인도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의 0의 여정 역시 여러 세기가 걸렸고 여러 차례의 우회전을 거쳐야 했다.

인도에서 바그다드까지

인도 ‘제로’호(號)는 아랍 선원들, 향신료 상인들과 함께 이 여행의 첫 번째 구간을 여행했다. 그들은 4,000년 전 인도양을 건너 수천 년 동안 인더스 문화와 아대륙 서부 해안에 사는 사람들과 무역을 했다. 약 1,300년 전, 천문학과 수학에 대한 인도의 사본과 교과서가 아랍 세계에 전해졌지만, 그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그다드에서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수학자이자 박식가인 모하메드 알콰리즈미(Mohammed al-Chwarizmi)가 인도에서 발견된 이러한 사본을 연구했다. 그는 새로운 발견에 너무 열광하여 826년에는 인도 숫자에 관한 자신의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인도의 십진법을 설명하고, 또한 아랍 숫자 체계에 숫자 0을 도입했다. 아랍어로 0은 ‘시프르(Sifr)’라고 불린다. 오늘날 영어와 프랑스어의 '제로(zero)'는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 이슬람 수학자 모하메드 알콰리즈미는 인도의 숫자와 계산 시스을 연구해 아랍 세계에 소개했다. © Michel Bakni/ CC-by-sa


830년에 알콰리즈미는 또 다른 교과서를 출판했는데, 이번에는 대수학에 관한 교과서였다. 이 책에서 그는 방정식을 체계적으로 푸는 규칙을 제시하여 수학적 접근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3다. 오늘날까지도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는 알콰리즈미라는 이름의 잘못된 번역에서 유래되었다.

무어인, 유대인, 그리고 최초의 번역

아랍 세계에 '0'이 퍼지면서 최초로 유럽에 진출하게 되었다. 8세기부터 아랍어 교과서가 무어인을 통해 이베리아 반도에도 전파되었다. 그곳에서 유럽과 유대인 학자들도 처음으로 아랍의 숫자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유대인 작가 아브라함 벤 메이르 이븐 에스라도 있는데, 그는 무어인이 지배하던 스페인의 대부분 지역을 여행했고 북아프리카까지 여행했다. 이븐 에즈라는 문법 논문뿐만 아니라 점성학, 수학 논문을 포함하여 아랍어에서 히브리어로 책을 번역했다.

이러한 글들은 다른 유럽 국가의 유대인 공동체에도 퍼져나갔으며, 일부는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아직 0이라는 숫자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 초기 번역본들은 대부분 주목받지 못했고, 스페인에서는 레콩키스타(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재정복)로 무어인의 통치가 끝났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수학적 지식 또한 기독교 유럽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피보나치와 "리베르 아바치"

제로의 다음 선급금은 이탈리아 수입상이자 세관 직원의 아들인 피사의 레오나르도, 피보나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사람에게 빚지고 있다. 그가 설명한 피보나치 수열은 1170년경 피사에서 태어난 이 수학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우리의 숫자 체계에 기여한 것이다. 피보나치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가서 그곳에서 인도-아랍 수 체계에 대해 배웠다. 총명한 젊은이는 곧 이 십진법이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로마법보다 상당히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1202년에 피보나치는 그의 획기적인 작품인 '산반수론'을 출판했다. 이 라틴어 산술 교과서에서 수학자는 인도-아랍십진법을 소개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9자리 숫자와 아랍인들이 제피르라고 부르는 부호 0을 사용하면 어떤 숫자라도 쓸 수 있다." 그런 다음 피보나치는 새로운 십진법의 실질적 이점을 보여주기 위해 예시 계산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상업 계산, 통화 교환 또는 수학에서 사용했다.

"알고리즘주의자들" 대 "아바키스트들“

이는 유럽에 0이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상인들과 일부 과학자들은 십진수로 계산하는 것의 장점을 금방 알아챘다. 지금까지 더 복잡한 계산에는 항상 구슬을 철사나 끈에 매달아 만든 도구인 셈판(주판珠板)이 필요했다. 로마 숫자로 쓰기 전에 결과를 앞뒤로 움직여 결과를 확인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새로운 숫자 체계 덕분에 이런 일은 더 필요 없게 되었다. 이제는 셈판 없이도 글로 계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십진법과 0은 점점 더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혁신에 대한 저항이 형성되고 있다. 많은 학자와 공무원이 로마 시스템과 바쿠스에 완강히 집착하고 있었다. 이들 "아바키스트"는 인도-아랍 시스템을 이질적이고, 게다가 비기독교적이라 거부했다. 거의 400년 동안, 제롤라모 카르다노와 같은 선구적인 수학자조차도 계산에 로마 숫자를 사용했다.

이러한 현상은 16세기에 들어서서야 바뀌었는데, 그중에는 "근대 컴퓨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리스(Adam Ries)도 있었다. 그는 독일어로 여러 권의 수학 교과서를 쓴 최초의 사람으로, 이를 통해 대중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피보나치와 마찬가지로 리스도 인도-아랍 수 체계를 사용하면 계산이 얼마나 쉬워지는지 보여주었다. 마침내 그 일이 이루어졌다. 인도에서의 긴 여정을 거쳐, ‘제로’는 이제 유럽에도 자리를 잡았다. (계속)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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