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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터키 해안에서 미노아 난파선이 발견,
- 목재 선체는 유실되었고, 수많은 구리 주괴를 포함한 화물만 남아 여전히 미스터리
- 벽화 중 하나에는 행렬처럼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8척의 미노아 함대 묘사돼
- 미노아 문명의 중요한 해상 항로는 크레타섬 북쪽 해안에서 북쪽의 테라 섬으로 이어져
미노스의 함대
강력한 해군력 –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이 많다.
미노아 문명이 번영하고 부를 누릴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강력한 함대였다. 크레타섬은 지리적 위치 덕분에 동부 지중해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따라서 미노아인들에게 바다와 해상 무역은 경제적, 문화적 성공의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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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노소스에서 발견된 이 돌고래 벽화는 미노아 문명이 바다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 Apeto /CC-by-sa 2.0 |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Thukydides)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인들조차 미노아의 해군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투키디데스는 "미노스는 오늘날 헬레니즘 해역으로 알려진 바다를 장악할 수 있는 함대를 보유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수입 증대를 위해 해적 소탕에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썼다.
유일한 이미지 자료그렇다면 전설적인 미노스 왕의 함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투키디데스가 묘사한 것처럼 정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을까? 고고학자들이 이 질문에 답하려면 난관에 부딪힌다. 미노아 문명의 해상 체계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자료는 매우 부족하다. 선박의 종류, 항구, 해상 무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선박의 외형, 크기, 구조, 용도를 밝혀줄 고고학적 유물 또한 극히 드물다. 2024년 터키 해안에서 미노아 난파선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목재 선체는 유실되었고, 수많은 구리 주괴를 포함한 화물만 남아 있었다.
미노아 문명의 해상 활동에 대한 유일한 실질적인 정보는 크레타섬에 남아 있는 드문 항구 시설 유적과 미노아 예술 작품에 묘사된 항구, 선박, 해양 생물들이다. 이러한 묘사는 점토 그릇에 새겨진 문양, 작은 인장에 새겨진 그림, 화려한 벽화, 단순한 점토 모형 등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이처럼 빈번하게 나타나는 해양 모티프들은 미노아인들이 바다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호송선단을 이용한 항해미노아 문명의 해상 활동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증거 중 하나는 이른바 서쪽 집 벽화 중 하나다. 약 3,500년 전의 이 벽화는 테라(Thera)섬의 아크로티리(Akrotiri) 유적 발굴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며, 아크로티리가 미노아 문명의 중요한 항구 도시였던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벽화 중 하나에는 마치 행렬처럼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8척의 미노아 함대가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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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크로티리 서쪽 건물 프리즈(여기서 자세히 볼 수 있음)에는 미노아 문명의 배와 항만 시설이 묘사되어 있다. © Zde /CC-by-sa 4.0 |
일부는 돛을 이용해 항해하고 있고, 다른 일부는 노를 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에 탑승한 화려한 복장의 인물들은 이것이 방문이나 행렬이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호송선단은 의례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보호의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화물선은 선원 수가 적어 해적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노아인들은 귀중한 화물을 해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로 호송선단을 이용해 무역 항해를 했다.
선박 경비병을 위한 개인 선실하지만 프리즈에 묘사된 장면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이 배들은 얼마나 컸을까? 왜 노를 사용했을까? 배 갑판 위의 구조물들은 어떤 용도였을까?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토마스 구탄딘(Thomas Guttandin)이 이끄는 연구팀은 이러한 질문들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배 묘사 분석과 디지털 복원을 통해 연구팀은 미노아 문명의 해상 활동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서쪽 건물 프리즈에 묘사된 배들이 아마도 10m에서 24m 사이의 길이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갑판 위의 구조물들은 가죽으로 외부를 보강한 선실로, 전사들의 은신처 역할을 했다. 한 묘사에서는 멧돼지 어금니 투구를 쓴 사람이 선실 안에 있으며, 약 5m 길이의 창이 손이 닿는 곳에 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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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 행렬을 묘사한 프레스코화의 또 다른 세부 모습이다. © Zde /CC-by-sa 4.0 |
테라, 로도스, 북아프리카로 가는 해상 항로미노아 문명의 배들은 돛과 노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탄딘과 그의 동료들에 따르면, 많은 만이나 항구에 돛만으로는 쉽게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이 필요했다고 한다. 고대의 사각형 돛은 역풍 항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과 에게해의 주요 풍향을 바탕으로 연구팀은 미노아 무역선단의 주요 항로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노아 문명의 중요한 해상 항로는 크레타섬 북쪽 해안에서 북쪽의 테라 섬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크레타섬 북동쪽에 있는 카르파토스섬과도 연결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로도스와 레스보스섬으로 향하는 항로가 있었으며, 종종 순풍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 크레타섬 남쪽 해안의 항구들은 주로 북아프리카와 레반트 지역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모든 것은 바다가 미노아 문명의 경제적, 문화적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는 가정을 뒷받침한다. (계속)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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