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현상이 바꾼 인류 역사 (4) "신의 바람 - 가미카제"

문광주 기자 / 기사승인 : 2026-04-19 09: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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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빌라이 칸, 급히 대규모 군대 소집해 1274년, 천 척의 한국 전함 이끌고 일본 침략
- 폭풍이 몰아쳐 쿠빌라이 칸 함대의 거의 3분의 1이 침몰
- 1281년, 두 번째 침략 감행. 조선 1천 척의 배와 2만 명의 병력, 중국 3천 척의 배와 10만 명의 전사를 지원
- 8월 15일, 또 다른 태풍이 태평을 휩쓸고 지나가. 태풍은 침략군의 배들 맹렬하게 강타

카미카제 - 신의 바람
태풍이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을 구하다


대부분 경우 자연 현상은 역사에 재앙, 파괴, 죽음의 전조로 기록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그중 하나가 13세기 몽골 제국의 쿠빌라이 칸의 위협을 받던 일본에서 일어났다. 이미 중국, 한국, 몽골을 지배하고 있던 몽골 제국은 일본을 자신의 제국에 편입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 그는 급히 대규모 군대를 소집하여 1274년, 천 척의 한국 전함을 이끌고 일본으로 향했다. 

▲ 몽골의 통치자 쿠빌라이 칸은 일본을 정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다. © historisch

치명적인 후퇴 - 첫 번째 폭풍

처음에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쿠빌라이 칸(Kublai Khan)의 군대는 큰 어려움 없이 외곽의 두 섬을 점령했다. 규슈섬의 하카타 만에 상륙한 몽골군은 저항에 부딪혔다. 사무라이들은 내륙의 미즈키 요새에 참호를 파고 증원군을 기다렸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쿠빌라이 칸의 군대는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포위 공격 동안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결국 몽골군은 포위를 풀고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배에 오르자마자 재앙이 닥쳤다. 거센 폭풍이 몰아쳐 쿠빌라이 칸 함대의 거의 3분의 1이 침몰했다. 애초에 항해에 적합하지 않았고 급조된 배들은 강풍과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일본인들에게 이것은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가미카제", 즉 신의 바람이 적을 결정적으로 물리친 것이다.
▲ 일본 사무라이들이 침략해 온 몽골군의 배를 공격하고 있다. © historisch

두 번째 시도, 그리고 두 번째 폭풍.

하지만 쿠빌라이 칸은 포기하지 않았다. 몇 년 후인 1281년, 쿠빌라이 칸은 두 번째 침략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조선이 1천 척의 배와 2만 명의 병력을, 중국 부족들은 3천 척의 배와 10만 명의 전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하카타 만은 침략군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 수비대가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들은 쿠빌라이 칸의 군대에 맹렬히 저항하며 몇 주 동안 방어선을 사수했다.

그러던 1281년 8월 15일, 운명은 또다시 그들을 덮쳤다. 또 다른 태풍이 태평양을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이번에도 태풍은 침략군의 배들을 맹렬하게 강타했다. 특히 급하게 개조한 강(江)배들이었던 중국 함선들은 이 재앙에 매우 취약했다. 절반 이상이 침몰했고, 수천 명의 병사와 선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군 역시 약 3분의 1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지만, 대부분은 간신히 탈출했다.

두 번째로, "신의 바람"이 일본을 침략으로부터 구해낸 것이다. 쿠빌라이 칸은 정복 계획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다시는 그처럼 대규모의, 따라서 위험한 군대를 모을 수 없었다.
▲ 기쿠치 요사이의 그림에서 '신풍'에 의해 몽골 함대가 괴멸되는 모습. © historisch/ Tokyo National Museum

가미카제 태풍은 실재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전설 속 태풍은 당시 실제로 존재했을까? 그리고 그 파괴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J.D. 우드러프(Woodruff)가 이끄는 지질학자들은 2014년에 이 질문을 더 자세히 조사했다. 그들은 규슈 하카타만(灣) 근처의 해안 호수에서 퇴적물 코어를 채취하여 몽골 침략 당시의 폭풍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실제로, 13세기 퇴적물에서 과학자들은 두 차례의 폭풍으로 인한 홍수 흔적을 발견했다. 해양 화석과 퇴적물은 당시 인근 만의 바닷물이 호수로 유입되었음을 시사한다. 우드러프는 "이 퇴적물들은 가미카제 태풍 발생 시기와 잘 일치하며 태풍의 강도가 매우 높았음을 증명한다"며 "이는 이러한 사건들이 극심한 기상 현상이 지정학적 경계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초기 역사적 사례 중 하나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계속)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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