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현상이 바꾼 인류 역사 (5) "날씨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

문광주 기자 / 기사승인 : 2026-04-19 1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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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전쟁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때로는 전세를 뒤집기도 했다.
- 폭풍, 폭우, 혹독한 겨울 날씨는 수많은 결정적인 전투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날씨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

역사를 통틀어 자연은 전쟁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때로는 전세를 뒤집기도 했다. 폭풍, 폭우, 혹독한 겨울 날씨는 수많은 결정적인 전투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1854년 크림 전쟁 당시 세바스토폴(Sewastopol)을 포위 공격하던 영국, 프랑스, ​​터키 연합군은 허리케인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1812년 러시아의 겨울은 나폴레옹 군대가 모스크바에서 후퇴해야 했던 원인 중 하나였다. 당시 병사들은 혹독한 날씨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 토이토부르크 숲의 헤르만 기념비에 새겨진 승리한 아르미니우스의 모습. © Tsungam/ CC-by-sa 4.0

헤르만(Arminius) 체루스칸과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또 다른 예로 서기 9년에 벌어진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를 들 수 있다. 이 전투에서 아르미니우스("헤르만") 케루스카인이 이끄는 게르만 군대는 퀸틸리우스 바루스(Quinctilius Varus)가 이끄는 로마 군단을 격파했다. 오늘날까지도 이 전투는 로마의 게르마니아 점령 종식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아르미니우스는 뛰어난 게릴라 전술뿐 아니라 유리한 날씨 덕분에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배신에서 시작되었다. 아르미니우스는 동맹으로 위장하여 로마 장군 바루스의 신뢰를 이용해 그와 그의 전군을 함정으로 유인했다. 지역 반란을 핑계로 아르미니우스는 1만 5천에서 2만 명에 달하는 병사와 5천 마리의 가축으로 이루어진 20km 길이의 대규모 보급대를 잘 정비된 도로에서 벗어난 우회로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 우회로는 험준한 지형으로 이어져 있었다. 울창한 숲, 가파른 경사면 등 여러 장애물이 로마군의 진격을 늦다. 로마 역사가 카시우스 코케이아누스가 후대에 기록했듯이, 로마군은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내고, 둑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멈춰 서야 했다.

폭풍우와 폭우

날씨 또한 로마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폭풍우와 끊임없는 비는 햇볕을 좋아하는 로마군의 진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역사가 코케이아누스는 그의 기록에서 "뿌리와 나무 그루터기로 미끄러워진 땅은 로마군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부러지고 쓰러진 나무 꼭대기는 그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썼다.

이러한 상황은 게르만 부족의 승리로 이어졌다. 악천후와 험준한 지형에 익숙한 아르미니우스의 군대는 숲에서 뛰쳐나와 흩어져 있던 로마군을 공격했다. 무거운 수레와 갑옷에 짓눌린 로마군은 기동력이 부족했고, 소수의 공격자들에게 맞설 기회조차 거의 없었다. 로마군은 거의 전멸했다.
▲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으로 향하는 모습. © historisch

스페인 무적함대의 공격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해전 중 하나인 영국 무적함대와 스페인 무적함대의 전투에서도 자연 현상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1588년, 스페인의 필리포스 2세는 영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숙적이자 해상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영국을 마침내 꺾는 것이었다. 마침내 5월, 130척의 함선과 2만7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스페인 무적함대는 리스본을 출항해 북쪽으로 향했다.

첫 번째 교전은 1588년 7월 말 영국 해협에서 벌어졌고, 본격적인 해전이 시작되었다. 크고 둔중한 스페인 함선들은 기동성보다는 근접전과 백병전에 더 적합하게 설계되었기에 영국 함선들에 비해 기동력이 떨어졌다. 무인 함선들이 불타는 가운데 항구에서 밀려난 스페인 함선들은 대형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다. 가볍고 사거리가 긴 청동 대포를 장착한 더욱 민첩한 영국 갤리선들은 스페인 함선들을 포위하여 여러 척을 격침시켰다. 결국 스페인군 2천 명과 영국군 수백 명이 전사했다.

북쪽으로의 탈출


해전 후, 스페인 무적함대의 영국 제도 주변 항로.

© 퍼블릭 도메인났다. 강풍으로 여러 척의 배가 손상되었고, 바람 방향 또한 불리했기에 스페인은 당분간 침공을 중단했다. 함대가 영국 해협을 통해 바람을 거슬러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대제독은 더 길지만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영국 제도를 우회하는 북쪽 항로를 택하기로 결정했다.
▲ 스페인 무적함대의 영국 제도 주변 항로. © gemeinfrei

하지만 이는 곧 치명적인 오판으로 드러났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해역에서 무적함대는 연이어 심한 폭풍에 휩싸였다. 강한 서풍은 육중하고 큰 스페인 함선들을 밀어붙여 차례로 좌초시켰다. 아일랜드 서해안에서만 다섯 척의 배가 침몰했다. 스페인 수병과 병사 3천 명이 사망했고, 1천 명은 난파에서 살아 남았지만 육지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스페인 함대는 영국과의 전투뿐 아니라 자연재해로 인해 총 64척의 함선과 1만2000명의 병력을 잃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함대의 패배 원인을 적의 전투력보다는 자연재해 탓으로 돌렸다고 전해진다. "나는 영국과 싸우기 위해 함대를 보냈지, 자연의 힘과 싸우기 위해 보낸 것이 아니다." (끝)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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